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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별로인 글은 잘 쓸 수 있다

by 틔움 2021. 1. 12.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있다. 속에 있는 생각과 마음을 꺼내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글쓰기는 어렵고 수수께끼 같고 혼란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런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오늘 점심 메뉴였던 된장찌개 끓이기와 비슷하다. 된장찌개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먼저 필요한 재료인 두부와 버섯을 사기위해 장을 봤다. 냉장고에서 양파, 호박, 고추, 파 같은 재료를 꺼내 각각 씻어서 손질하고, 쌀뜨물에 무를 익혀 육수를 내고, 알맞게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모든 야채 재료들이 적당히 익을 수 있도록 냄비에 투하하는 순서와 시간을 잘 계산한다. 여기까지 쓰일 에너지만 생각해도 머리가 어질거릴 정도로 귀찮다. “차라리 라면 하나 끓여먹고 말지.”라는 생각이 굴뚝이다. 된장찌개 끓이는 와중에 밥도 해야하고 계란 후라이도 하나쯤 익혀야하니 여러가지를 동시에 신경쓰다보면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 된장찌개가 애초 원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밥상이 차려지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계란후라이에 소금을 빠뜨렸다던지, 반숙을 하고 싶었으나 타이밍을 놓쳐 완숙이 되었다던지, 된장찌개에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부어서 풋내가 난다던지 등등의 예상치못한 변수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주제를 고르고, 단어 선택을 고민하거나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가 분명치 않을 때, 혼란스럽고 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글쓰기의 어려움과 막막함에 대해서만 열심히 이야기할 정도로 나는 매사에 걱정과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차라리 하지 않아온 시간들이 있다. 귀찮은 된장찌개는 제쳐두고 그냥 인스턴트 라면을 먹어온 시간들이 있다. 라면은 참 맛있고 조리가 간편하지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고 다먹고 난 후에 입에 남는 텁텁함이 불쾌할 때도 있다. 된장찌개는 요리하기 귀찮지만 건강에도 좋은 야채를 많이 먹을 수 있으며, 맛있고, 소화도 잘 된다. 음식은 한끼 먹고 사라지지만 (물론 몸에 미치는 영향이 있겠다) 글은 다 쓰면 기록되고 오랫동안 볼 수 있다. 잠깐 맛없고 말 게 아니라서 더 조심스럽고 더 고민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 나를 표현하고 싶고, 나를 이해하고 싶으며, 사람들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주고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싶다. 그 전달의 과정에서 타인과 나 사이에 길을 내고 싶다. 잘 쓰기는 못하지만 못 쓰기는 할 수 있으니깐. 아직 내 글은 나를 표현하거나 이해하기는 커녕 무엇을 쓰고 싶은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방향을 정하지 못하기 일쑤지만 계속해서 못쓰다보면 자그마한 길이라도 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글쓰기도 요리도 반복해서 꾸준히 하다보면 분명히 실력이 늘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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