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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1년 사이에도 달라진다

by 틔움 2021. 1. 12.

십년다이어리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십년동안 쓰는 일기장이다. 첫 페이지는 1월 1일이고 마지막 페이지는 12월 31일인데 각 날짜마다 십년치의 일기를 쓸 수 있는 칸이 그려져있다. 길어봐야 세네줄 정도로 간단한 일기를 쓸 수 있을 뿐이지만, 십 년 동안의 일기를 날짜별로 기록하고 볼 수 있다. 친구의 소개로 밤의 서점에서 제작판매하는 십년다이어리를 알게 되어 호기심을 느끼던 중, 작년에 구입해 쓰기 시작했다. 첫 해엔 모든 일기를 빈페이지에 작성했기 때문에 그저 일기를 적는다는 느낌이었고, 올해에 드디어 두번째 칸에 일기를 작성하며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내가 이렇게나 다름을 체감하고 있다. 오늘의 일기를 쓸 때마다 작년의 오늘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년 1월 1일은 첫 일기를 써서 기분이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자고 적혀있다. 뭘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까. 그건 적혀있지 않아서 모르겠다. 올해 첫 날엔 엄마와 잡채를 만들면서 대판 싸웠다. 해는 바뀌어도 엄마와의 다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적었다. 지난 해 1월 2일은 회사에서 새롭게 회계업무를 전담하게 되면서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고 있다. 마지막 문장이 ‘좋다’로 끝나있네. 아마 회계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이 컸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하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경험이 쌓이거나 발전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회사 자체에 대한 실망이 날로 커져서 더 흥미가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의 같은 날엔 작년에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그렇다. 지금 우리는 모두 그 회사를 관뒀다)와 또 다른 친구와 함께 급작스럽게 바다를 보러 떠나 신이 났다. 작년의 1월 3일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게 무척 힘들다고 적혀있다. ‘무엇을 지나가고 있는 걸까’ 하고 질문을 던졌었군. 글쎄. 1년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그 사람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를 쓰고 있었겠지. 일을 제대로 하고 성장해나가고 싶었으나 내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화가 많이 났다. 십년다이어리는 일 년 전의 나를 더듬어볼 여지를 준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첫 해에는 어서 빨리 두번째 칸을 채우면서 되돌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막상 해보니까 마음이 부대끼는 작업이라서 썩 즐겁지만은 않지만. 아직은 1월 초이지만, 계속해서 두번째칸을 채워나가다보면 어떻게 마음이 달라질지, 또 세번째칸, 네번째칸, 그리고 열번째칸까지 채울 때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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