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시간 부자라는 말을 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하는데, 시간이 돈 못지않게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는 것 같다. 흥청망청 시간 부자로 산 지 3주 정도가 되어간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루에 5~6시간 씩 티비를 보고, 읽고 싶을 때 읽으며 해야할 일이나 약속도 별로 없이 오로지 마음대로 시간을 쓰며 살았다. 지난 6개월 동안 농업교육을 위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 종일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교육을 받는 입장이다가 교육을 모두 마치고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해방감이 느껴졌다. 지겨워질 때까지 실컷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자영업을 시작하기도 어려우니까’하며 상황을 핑계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맘을 편히 먹었다.
쉬거나 노는 시간을 생산하지 않는 시간으로 여겼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라.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욕구들이 깨어나고 알지 못하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황예지 작가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을 읽으면서 글과 함께 실린 사진들이 매력을 느낀 덕분에 마음 한 켠에 있던 사진에 대한 애정이 깨어났다. 사진을 찍으면 일상 속 풍경에 좀 더 애정을 쏟으며 관찰할 필요가 생기고, 어떤 느낌과 메시지를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지난 1년 동안 쓰지 않던 필름카메라 어플을 켜서 일상 속 풍경들을 찍기 시작했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으면서 비건을 해야할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하는 경험을 했다. 작가의 말처럼 세치 혀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서 인간이 고기를 먹음으로써 지구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들을 모른척하고 지내왔지만,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그것들을 언젠가 마주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미뤄온 책을 읽어보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스카이캐슬’을 정주행하면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디까지 자기 자신밖에 못 보는 사람이 되는지 타인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얼마나 상처주면서 사는지에 대해 소름끼치도록 공감했다.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적어도 경쟁에 목숨걸고 내 이익에만 목숨거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유튜브로 ‘문명특급’을 보면서는 재재같은 사람이 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재재님은 정말 배우고 싶은, 멋드러진 애티튜드를 잔뜩 보여주신다. 칭찬을 하면 거절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고, 상대의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면 깊이 공감하고 함께 화내주시고, 인터뷰 하시는 분들에 대해 자세한 조사와 암기를 통해 그 사람을 감동시키는 등이 지금 기억나는 정도이다. 문명특급을 재미로 보기도 하지만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3주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비건을 향해서 작은 실천을 시작하기 위해 1월말까지 육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감정만으로 채식을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논리적 탄탄함이 비건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시간 부자는 이 기회에 책을 읽어서 논리적 탄탄함을 쌓고, 요리를 해보며 레시피도 체득할 생각이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농업에 대해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공부도 하고 싶다. 유기농이나 자연농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고 비전을 그리는 과정 말이다. 쓰다보니 비장하고 다짐 중심적인 글이 되고 있는데...
무튼 하고 싶은 게 많아지다보니 시간을 체계적으로 쓰고 싶어졌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제멋대로면 밤마다 배달음식 앱을 켜놓고 어차피 시키지도 않을 음식들을 들여다보며 내적 갈등을 하게 되더라. 9시 넘어서 일어나면 아침을 너무 늦게 먹게 되어 점심과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해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생활계획표를 느슨하게 짜보기로 했다.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정하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을 정했다. 하는 김에 욕심을 좀 부려서 아침요가와 저녁요가 시간도 정하고, 이참에 오전 1시간 동안은 글쓰기를 하고, 오후 1시간 동안은 산책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시작되면 주전자 뚜껑을 스케치북 위에 올려놓고 반듯한 원을 그리고 촘촘하게 생활계획표를 짰다. 며칠간은 벽에 붙은 계획표를 시시각각 확인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을 해야한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고 내가 로봇이 된 것처럼 재미가 없어져서 “됐어 그냥 대충 살아!”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삼십대에 적는 생활계획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다만 그것을 기준으로 두고 생활할 때, 아무 제약도 없을 때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 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계획표를 작성한 다음 날인 오늘, 기상 예정인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일어났지만 아침요가를 건너 뛰자 아침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제한시간 60분인데, 90분이 걸려 지금에야 마무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부자이고 내가 짠 생활계획표에는 자유시간이 반이므로 이 정도 시간 초과는 얼마든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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