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 이 이모 예쁘지?
나 : 순간 당황
사장님 : 바로 대답이 안 나오는 걸 보니까 아닌가보네~ㅋㅋ
나 : 더 당황
사장님 : 이모한테 피자 도우 만드는 거 배워요
나 : 네
직원분 : 왜 사장님이 안 가르쳐주시고요?
사장님 : 아니 아무래도 아가씨라서 좀 그렇네요~
‘으으으응...?’
사장님 : 00씨 흰머리가 엄청 많네? 완전 할마이구만 할마이
나 : 네, 유전이에요(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다급하게 튀어나온 말)
사장님 : 00씨는 처음 봤을 때도 못생겼는데 볼수록 더 (...) 못생겼네요 하하하
(말하고나서 내 눈치를 본다)
나 : ...(개그라고 한 것 같은데 이걸 어느 부분에서 개그로 받아들여야하는 건지 당황)
기분이 상하는 농담이 하루 이틀 쌓여가고, 집에 가서도 생각나고 빡친다. 부글부글거린다.
아침요가에 나갔다가 회원님들과 티타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일하는 곳은 괜찮냐는 말에 불쑥 이런말이 나왔다.
“사장님이 이상한 농담하는 것만 빼면 괜찮아요 !”
같이 요가하는 회원님 한 분이 얼마 전 들었다는 라디오 사연을 들려주신다. 갓 부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말씀에 대해서 면전에 대고 “교장선생님~ 너~~무 재미 없!어!요!”하고 말했다는 거다. 회원님이 어찌나 맛깔나게 재연해주시는지 듣는 사람들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함께 있던 다른 분은 사장님이 또 그러면, ‘저 그런 농담 싫어해요~’하고 한 번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진지하게 말고, 지나가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 하고 외치며 말할 타이밍을 기다리겠노라 다짐했다.
다짐은 했지만 걱정이 된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가 분위기 완전 싸해지면 어떡하지. 사장님한테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유별나다고 다른 직원들한테도 미움받을지도 모르잖아. 이곳은 집과 가까워서 출근하기에 무척 편하고, 초보도 주방 일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데 이런 일로 입장이 난처 해져서 그만두게 되면 어쩌지. 어떻게 말하는 게 최선일까?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자. ‘저 그런 농담 싫어해요~’
일하면서 말할 타이밍을 기다리는데 딱히 전처럼 대놓고 나한테 지적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빨리 이야기하고 싶으니 제발 한 마디만 해라. 그러다가 사장님이랑 같이 오이를 씻게 되었다. 사장님은 오이를 씻고, 나는 씻긴 오이 끝부분을 잘라서 바구니에 담았다. 좁은 싱크대에 둘이 붙어서 작업을 하려니까 좀 어색하셨는지 ‘너무 가깝나?’ 그러신다. 나는 갑자기 지금 말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나 : 가까운 건 괜찮은데 사장님이 이상한 농담 하시니까 그게 불편해요
사장님 : 내가 언제~
나 : 이상한 농담 하시면 제가 집에가서 일기장에 적을지도 몰라요
사장님 : 아하하. 일기장에 적는다고? 내가 무슨 농담을 했는데?
나 : 외모가지고도 하시고... 그러시잖아요...
(그 이후에도 대화가 이어지긴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초긴장 상태였다)
잠깐의 대화가 갑자기 끝나고 사장님은 남은 걸 마무리하라고 한 후에 다른 작업을 하러 떠나셨다. 나는 타이밍을 좀 더 기다릴 걸 정확히 외모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뭉뚱그려서 이상한 농담이라고 말한 탓에 사장님이 아재 개그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알아들었을까봐 걱정과 후회를 하며 남은 오이 작업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사장님이 출근하자마자 나를 보고 말했다.
사장님 : 아니 어제 농담하지 말라고 해가지고~ 어쩌구저쩌구
나 : ...
사장님 : 이젠 00씨가 내 농담에 적응할 일만 남았어.
나 : 네...? 사장님이 농담을 하지 않을 생각은 없으신가요? 하하
사장님 : 응 난 없는데?!
헐. 곧이어 재미 한 개도 없는 농담을 던진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마스크가 있는게 너무 다행이다. 이미 내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 : 어? 이제 아예 반응을 안하네? 현명한데~올~
나 : ...(최선을 다해 무반응으로 일관)
걱정과는 달리, 사장님은 그 이후에도 나에게 일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아주 속좁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기분 탓인지 그 이후로 이상한 농담을 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연인지 그 날 이후로 스케쥴이 안 겹쳐서 이번주는 사장님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혹시나 그 일 때문에 내가 불편해서 일부러 피하는 건가? 걱정되는 마음이 여전히 들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냥 두기로 한다. 어쨌든 나는 나를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을 견디지 않고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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