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보이는 여섯 살 어린이를 데리고 산 지 3일 차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오늘 아침 일인데, 어제 블로그에 쓴 글 아래에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글이 너무 좋다고, 나에게 참 멋진 사람이라고, 굉장한 칭찬을 남겨주었다. 그때 여섯 살 어린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칭찬 같은 거 듣기 싫다고 짜증 난다고 한다. 왜 칭찬이 짜증 나냐 물었더니, 자기는 친구에게 지질한 모습만 잔뜩 보여주었단다. 속 좁게 별것도 아닌 거로 서운해하고,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한 채 내 입장에서만 친구의 삶을 부러워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불편하다고 말해서 친구까지 불편하게 하고, 그렇게 별로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는데 친구가 멋지다고 칭찬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 자기가 재수 없게 멋진 척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창피하다고 한다. 나는 일단 무조건 맞장구를 친다. 그랬구나, 네 입장에서는 친구의 칭찬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구나. 그래서 고개를 세차게 가로로 저으며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여섯 살 어린이는 그래, 바로 내 마음이 그렇다고. 라는 듯한 눈빛으로 울상을 지으며 어리광을 부리는 표정이 된다. 나는 어린이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그래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내 생각에 친구는 너의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었기 때문에 글에 공감한 것 같아.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 친구의 좋은 마음은 그대로 인정해주어도 괜찮아. 친구가 네가 속 좁지 않고, 지질하지 않아서 멋지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그저 이 글이 정말 좋다고 그리고 잘 읽었다고 한 거야. 친구한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친구의 좋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아쉽지 않겠어? 그리고 친구는 멋진 척과 멋짐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 글 속에서 너의 장점이 친구에게 보였을 거야. 실제로 너에게는 멋진 면이 여러 가지 있어. 그것은 누가 한마디 말로 갑자기 끌어올려 주거나 끌어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넌. 물론 당연히 별로인 모습도 있지. 스스로 싫어하는 점들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너의 장점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건 아니야. 이제 친구가 건넨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겠어? 어린이는 아직도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미심쩍은 표정이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다. 더는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내 이야기가 좀 받아들여지는가보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친구의 댓글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친구에게 답장을 같이 남겼다.
오늘 정오쯤엔 필요한 물건을 사러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꽤 먼 길이라 삼십 분째 정도 걷고 있었고 집까지는 이십 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 도착하면 볶음밥을 해먹을 생각이었는데, 시간도 예상보다 좀 늦어졌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바지락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눈앞에 보이자 어린이가 바지락칼국수를 사 달라고 조른다.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서 지출이 컸으니까 외식은 자제하고 집밥으로 생활비를 아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밥도 있고, 국이랑 반찬도 있는데 굳이 외식할 필요가 있어? 어린이는 그건 저녁에 먹으면 되잖아. 그리고 영화 <세 자매>에서 미옥이가 얼마나 맛있게 바지락 칼국수를 먹던지 그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정말 먹고 싶단다. 그래그래. 아무래도 너의 의지가 아주 강한 것 같구나. 바지락 칼국수를 먹자. 할인도 받을 수 있으니까 한 그릇에 고작 오천 원 정도인데 너무 매몰차게 굴 필요 없지. 먹자. 먹자. 그렇게 바지락 칼국수를 국물까지 들이켜고 나니 아주 기분이 좋아서 집에 오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남은 돈으로 얼마나 더 생활할 수 있는지, 자투리 시간에 알바라도 좀 해볼 곳이 없는지 고민하면서 구인정보가 담긴 생활정보지를 챙겼다.
길을 걷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내 나이 또래의 여성과 대여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버스에서 내려 손을 잡는다. 성인 여성이 아이를 보는 표정에 행복이 가득하다. 햇빛이 부서지며 쏟아지고 둘이 함께 걷는 뒷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내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여섯 살의 어린이 얼굴을 보았다. 그 아이는 아직 활짝 웃지 않는다. 나도 그 아이를 보고 활짝 웃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꽤나 무뚝뚝한 얼굴로 지내고 있다. 앞서 걷던 그들처럼 이 아이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지만, 아직은 내 마음이 그 정도로 말랑거리지 않는다. 이 어린이는 꽤 논리적이고, 무턱대고 땡깡을 부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창작소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담_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과하는 것 뿐 (0) | 2021.02.28 |
---|---|
주방 보조 - 첫 도전 (0) | 2021.02.22 |
상담_여섯 살의 나와 함께 살기 (0) | 2021.02.18 |
나의 좋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2) | 2021.02.16 |
공을 넘기는 기분 (0) | 2021.02.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