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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나의 좋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by 틔움 2021. 2. 16.


오랜만에 만난 친척 동생이 말했다. “언니가 쓴 책은 읽다가 말았어. 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언니의 마음이 잘 보이질 않더라.” 4년 전쯤에 제주에 한 달간 지내면서 매일 적은 일기를 엮은 책이었다. 제주에서 돌아와 얼마 후 책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고, 그 일기와 사진들을 원고로 했다. 정식 출판을 한 책은 아니고 그저 몇 권 만들어보았던 것인데 지인들은 책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이전에 누군가 그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잘 알고 싶다는 상대의 말에 용기 내 빌려주었는데, ‘이것도 책이냐’는(내 귀에는 그런 식으로 들렸다) 말을 들었다. 내 마음을 알고 싶었다는 동생의 말에 왠지 따뜻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조금 창피해졌다. 좀 당황해서 “그때는 나도 내 마음을 알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글 쓰면서 그때보다 마음을 보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어”라고 변명하듯 말했다. 동생과 헤어지고 난 후에 책장에서 오랜만에 그 책을 꺼내 읽었다. 짧은 일기이고 그저 사실 나열에 불과한 부분도 많지만, 내게는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주에서 지내면서 새롭게 보는 풍경과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서, 매일 짧게라도 하루를 기록하는 데에 의미를 두었다. 어쩌면 그저 적는 행위가 중요했던 것 같다. 타인이 나의 마음을 알기에는 부족한 글이지만, 나에게는 좋았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괜히 방어적인 마음으로 둘러대듯 말한 것이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진다.
평가라고 느껴지는 말에 대해서 마음은 심하게 요동친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확인받지 않으면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판타스틱 우울 백서>라는 책에서 작가 서귤님의 인터뷰를 보고 멋진 구절을 발견했다. 서귤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에 언제나 100% 만족한다고 했다. 언제나 내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아쉽다면 지금의 내가 그 정도인 거라고, 작품은 작가를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의 작품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그것도 반가운 일이라고,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니까. 너무 멋졌다.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마음이 저만큼 앞서 나가 있어서, 지금의 나를 들여봐주기 어렵다. 이만큼의 나도 과거에 비교하면 많이 성장해온 것인데, 언제나 앞선 곳을 보고 있어서 오늘의 나에게 만족할 수가 없다. 책상에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일단 그 뿌듯함을 만끽하며 블로그에 몇 번이나 접속해 다시 읽어보고, 사람들의 ‘좋아요’를 기다린다. ‘좋아요’를 받으면 좋고, 받지 못하면 좋지 않다. ‘사람들은 왜 내 글이 맘에 안 들까?’ 궁금하고, 글을 다시 읽으면서 ‘역시 이래서인가’라고 추측하며 흠을 찾게 된다. ‘좋아요’가 눌리면 글을 다시 읽으며 ‘역시 좋군’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완성한 직후에 느끼는 만족감을 잘 기억하고, 블로그에 접속하며 ‘좋아요’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하지만 생각과 달리 어렵다.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알아주기 위해서는 쓰는 과정에서 조금 더 노력하고, 완성한 후에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알아주자고 재차 다짐한다. 그저 알아주면 좋겠다. 오늘의 내가 의자에 앉아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예의 있게 꺼내 보이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4년 반 전에 제주에서 쓴 글들은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기로 한 약속을 지켰고,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글쓰기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도 글이라는 것을 써보고 싶어졌다. 두 달 후엔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했고, 그런 과정 덕분에 지금 책상에 앉아서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실은 까먹었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알겠다. 다른 사람들의 ‘좋아요’가 너무 좋아서 글을 쓰면서 느꼈던 ‘나의 좋음’은 잊힌다. 자꾸자꾸 다시 떠올리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의 좋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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