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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낭독 모임의 탄생

by 틔움 2021. 2. 11.



간밤에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눈이 와서 출근을 안하게 되었다며 오후에 책을 같이 읽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마침 눈도 오고, 기분도 말랑거려서 혼자 있기보다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먹고난 후 책장을 둘러보았다. 둘 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책이 의외로 많지 않아서 고민을 좀 하다가 ‘당신은 옳다’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목이 약한 편인 나는 중간 중간 침을 삼켜가면서, 목을 가다듬으며, 따뜻한 차도 마셔가면서 책을 읽었다. 낭독은 좀 어색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읽는 행위 자체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괜히 잘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심지어 연기 욕심까지 생겼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은 마침 하나의 소제목에 세네쪽 정도의 분량이라 한 사람이 읽기에 적당했다. 하나의 글을 다 읽고 나면 방금 읽은 부분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책이 말하는 내용이 공감의 중요성이라 서로 하는 이야기에 충고나 조언, 평가, 판단 없이 그저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어떨 때는 낭독 시간보다도 대화 시간이 더 길 정도로 대화를 많이 나눈다. 둘 다 할 이야기가 더 이상 없어야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책을 많이 못읽을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조급함이 생겨서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은 맘에 하루에 읽을 목표량을 정해놓자고 제안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까 또 수긍이 갔다. 언제나 책을 좀 더 빨리 많이 읽어내고 싶다는 조급함이 들지만, 책을 천천히 읽는 것도 충분히 좋다. 내 생각으로도 읽고, 친구의 생각으로도 읽는다. 빨리 읽는 대신에 소화가 될 만큼 조금씩 천천히 한땀 한땀 짚어가며 읽으면 글자가 온 몸으로 읽히는 기분이다.
한 번은 친구가 책에서 나오는 사연들처럼 각자의 사연을 써와서 나눠보자고 했다. 내키지 않는 마음도 들었지만 친구가 해보자고 하니깐 기꺼이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함께의 묘미 아닐까. 혼자라면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되는 것.) 집에서 글을 쓸 때는 내 깊고 어두운 마음에 대해서 소리내어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용기 내어 낭독하고 나니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막상 읽고 나면 후련하다. 기대 이상이다 싶고 내가 쓴 게 맘에 든다. 진심을 담아 쓴 글을 소리내어 읽는 행위는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도 뭉클하다. 왠지 응원하게 되고 끝까지 다 읽은 친구의 용기가 대단해서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된다.
매번 모임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고 집이 워낙 가까운 덕분에 각자 시간이 될 때에 만났다. 장소는 우리 집이거나 친구의 집이었다. 그날의 집 주인은 차를 내어주고, 가끔은 집에 있는 과일이나 과자를 내어주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드디어 첫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미리 읽어오지 않아도 되어서 부담이 없고, 또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아서 다음 책도 읽어보기로 했다. 어떤 마음을 연습해야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도움을 받고 싶어서 또 심리학 서적으로 골랐다. 전미경 작가님의 ‘솔직하게, 상처주지 않게’라는 책이다. 한 시간 넘는 회의를 거친 끝에 모임 이름도 정했다. 모임의 매력이 잘 드러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기에도 그럴듯 한 것으로 고민하다가 일단 ‘단지공감’으로 정해봤다. 이름처럼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없이 서로에게 ‘단지공감’ 하는 것을 이 모임의 중요한 목적으로 두었다. 그리고 우리 모임에 맞을 것 같은 지인에게 새로운 모임원 자리를 제안해보기로 했다. 어느날 문득 친구가 제안한 만남이 어느새 이름도 생기고, 새로운 모임원에게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의 낭독 모임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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