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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고기 없는 1월

by 틔움 2021. 2. 1.


너무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너무 많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비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물털 대신 웰론 소재의 패딩을 사거나 가죽 제품을 사지 않거나 그런 윤리적 소비에 대한 노력은 있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참는 건 어렵고 막막하게만 느껴져서 선뜻 하지 못하다가, 일단은 작은 거부터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12월 말부터 1월 말까지 총 5주간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육수에 고기가 들어가거나, 식품 첨가물처럼 소량 들어가있는 것은 그냥 먹었고, 해산물, 유제품, 달걀도 먹었다. 저스트 고기 덩어리를 재료로 한 음식만을 먹지 않아보기로 했다. 처음엔 드디어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는 뿌듯함으로 설레고 재밌는 기분이기도 했지만, 중반부터는 서서히 익숙해졌고, 마지막에는 튀긴 고기(치킨이나 탕수육 같은 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참느라 괴로웠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함께 하는 식사에서 만두 두번, 탕수육을 한번 먹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나는 왜 고기를 먹고 싶은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기만큼 손쉽게 감정을 채워주는 음식이 있을까. 한 번은 가족식사 자리에서 모두가 소고기를 먹는데 나는 된장국의 두부를 건져 쌈에 싸먹었다. 물론 그것도 아주 맛있었지만 뭔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내 눈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소고기로 향했다. 잘 참고 집에 왔는데 밤 늦게 요기요 앱을 켜고 치킨을 시킬 것인지 말것인지 내적 갈등을 하며 계속 치킨 사진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고기로만 채울 수 있는 어떤 욕구가 있는데 그게 뭔지 잘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무척 강력한 욕구라는 것이다. 그날 요기요를 끄는 데 성공했고, 편의점에 달려가 새우버거(새우를 먹는 것도 편치는 않다만)를 사서 집에 있는 토마토, 양상추, 올리브를 잔뜩 넣어서 만족스럽게 먹었지만, 다음날 밤엔 다시 요기요 앱을 켜고 치킨 사진들을 보면서 전날과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마치 치킨을 실제로 먹기 전까지는 그 고민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주말 저녁에 치킨 정도 시켜먹는 것은 현대인의 자연스런 보상심리가 아닌가 싶다가도 닭들은 무슨 죄인가 싶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당최 모르겠다. 고기가 정말 그렇게 최고로 맛있는 건 아닌데 왜 그럴까. 만족스러운 식사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답은 없고 계속 질문만 생긴다. 그나마 대부분 집에서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던 게 다행이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자주 식사를 했어야했다면 고기를 먹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저 고기 안먹어요’ 라고 선언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내 말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고, 사람들도 함께 먹을 메뉴에 고기 아닌 다른 음식을 생각해주기도 한다. 동시에 남의 눈이 너무 의식되서 불편하기도 하다. 혹시라도 내가 참지 못하고 고기를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한 달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주변에 비건지향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비건음식을 만들어서 나누는 게 너무 큰 기쁨이고, 함께 모여서 고기를 먹는 것과는 다른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었다. 주변에 비건 지향인 친구가 늘었으면 좋겠다. 비건 음식 세계에 눈을 뜨는 기회이기도 했다. 비건요리 수업 덕분에 비건 치즈로 여러가지 만들어보고 비건 치즈가 완전 맛있는 것을 알았다. 만들기가 생각보다 쉬운 것도 알았고. 다만 양식 메뉴들이 거의 전부라서 한식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나는 좀 아쉬웠다. (양식도 잘 먹고 한식도 잘 먹지만 한식없이는 절대 못 살아) 비건 만두나, 대체육, 템페, 비건 치킨 등 제품으로 나온 것도 다양하게 접해봤다. 고기로 만든 음식과 비교해서 생각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 음식들은 각자 고유의 개성이 있고 전부 맛있고 매력이 있었다. 비건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관련 책이나 컨텐츠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최근에 <아무튼, 비건>을 읽었고 <더 게임체인저스>를 봤고, <비건 세상 만들기>라는 책을 조금 읽다가 말았다. 참, 자연농 책을 읽으면서도 비건에 대한 생각을 많이했다. 사람들이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을 거스르고 땅을 갈고 비료를 쓰고 농약을 쓰는 건데 사실 그거 없이도 충분히 자연은 우리에게 식량을 허락한다고 한다. 땅 갈고 비료쓰고 농약쓰는 게 지구와 인간을 계속해서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그 말이 꼭, 인간이 고기를 끝도 없이 먹어대느라 산림을 망치고 공기를 나쁘게 하고 동물을 생명 아닌 수단으로 삼으며 환경과 생명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말과 겹쳐서 들렸다.

고기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 동안 어지러운 느낌이 있었다. 원래도 앉았다가 일어설 때나 몸이 안좋을 때 좀 어지러울 때가 종종 있는데, 일상 속에서 살짝 어지러운 느낌이 자주 들었다. 요즘 운동량이나 햇빛을 보는 횟수가 줄어드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아서, 아니면 그저 기분탓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단숨에 비건으로 식생활을 바꾸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는 그런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어지럼도 그렇고, 튀긴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력하게 일어난다. 어떤 이유로든 고기를 먹게 될 때에, 내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나를 너무 비난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멀리보고 조금씩 변화할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너무 무거워지고 버거워져서 ‘일단 할 수 있는 선에서 한다’ 정도가 더 지속가능한 생각인 것 같다. 목표는 완전 비건이지만, 빨리가는 것이 최우선은 아니고, 당장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비건> 책에서 읽은 조언 덕분에 이런 단기 도전을 해봤고, 덕분에 조금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일단은 오늘 치킨을 먹고 나서(...) 앞으로의 비건 실천 계획을 다시 점검해봐야겠다.

#고기없는1월 #비건지향 #아무튼비건 #더게임체인저스 #자연농 #비건실천 #새해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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