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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농사

by 틔움 2021. 2. 3.


작년 여름, 농부교육의 실습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홍성의 넓은 유기농 논과 밭을 쳐다보며 서있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겨우 떡잎을 내던 아기 열무들이 어느새 무성한 잎을 피워내어 이젠 청소년 열무의 모습으로 보였다. 열무밭 뒤로는 벼가 심겨있는 푸른 빛깔 논이 있었고, 그 옆과 주변 전부도 논이거나 밭이었다. 농부들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덕분에 잡초 없이 말끔하게 줄맞춰서 작물들이 심겨있는 풍경이 이상하게도 갑갑하게 느껴졌다. 논과 밭이 자연답게 느껴지지 않고 평소와 달리 뭔가 낯설었다. 인간이 기획하고 구획하고, 잡초도 벌레도 용납하지 않는 곳. 그것은 자연일까 아니면 인간의 작품일까.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자연이 아닐리 없지만 마치 자연을 거스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은 즐겁지만, 그 풍경은 즐겁지 않았다. 그저 자연 그대로인 풍경이 보고 싶어 늪을 떠올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인간의 의도는 거의 담기지 않은 늪. 창녕에 있는 우포늪에 간 적이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물가에 노인이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젓고 있는 사진 한장을 본 후로 언젠가 꼭 우포늪에 가서 그 습한 아름다움을 느껴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실제로 보게 된 우포늪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우포늪의 인상은 즐겁고 밝은 곳이라기보단, 어둡고 거대하고 무서운 인상이었다. 한 걸음을 더 내딛어 그 생태 공원 안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났다. 아주 큰 몸집을 가진 새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꿈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쨍하고 비치는 햇볕 아래 반듯하게 줄맞춰서 벼와 열무가 심어진 논밭 풍경을 보다가 왠지 우포늪이 그리워졌다.

농부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짓는 농법인 관행농을 배웠다. 트랙터로 논밭의 흙을 갈아엎고 화학비료로 흙에 양분을 공급하고, 잡초가 덜 자라도록 비닐 멀칭을 하고, 병충해 방제를 위해 농약을 주기적으로 뿌리고, 최대한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하기 위해서 수정벌이나 호르몬제를 이용하고, 환경을 최적화하고 인력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팜을 지어서 설비를 갖추기도 한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농업을 위해 수천만원대의 트랙터, 경운기 등의 기계, 작동을 위한 석유, 땅을 산성화시키는 화학비료, 수질오염과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는 농약, 잘 썩지도 않는 멀칭용 비닐과 스마트팜에 쓰이는 각종 재료들, 설비들이 소요된다. 처음 농부가 되고 싶다던 마음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생명이 나고 자라는 일을 내손으로 도우며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감각들이었는데, 관행농은 내가 꿈꾸던 농업과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마치 공장처럼 원가 대비 수익만 맞으면 오케이고, 자연을 이용해서 최대한 뽑아 이익을 낸다는 듯,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농사로 ‘대박’ 터트리긴 것처럼 느껴졌다. 수업시간에 유기농에 대해서 질문하자 어떤 외부 강사는 유기농 농사를 짓다가 생활고로 자살한 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라리 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잔인했다.
유기농은 관행농과 달리 화학성분으로 이루어진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땅이나 사람에게 덜 해로운 가축 퇴비나 자연유래성분의 유기농약을 사용한다. 다른 부분에서는 관행농과 비슷하다. 비닐멀칭도 하고 트랙터로 흙을 갈아엎기도 하고, 비닐하우스 시설도 한다. 화학비료와 농약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말이 이제는 아주 널리 쓰이고 있으며 광고나 마케팅 덕분에 사람 몸에도 이롭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농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글쎄 정말 유기농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을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연농을 알고부터는 의문이 생겼다.

자연농은 땅을 가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가와구치 요시카즈님은 ‘시체의 층’에 대해 이야기한다. 땅 위에서 식물이나 동물이 죽은 시체가 썩고 그것은 그대로 양분이 되어 그 위에 심어진 모종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돕는다. 그러니 굳이 땅을 갈아 엎어서 그 시체의 땅을 없애고, 땅 속에 있는 생명과 유기물들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연농은 병충해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그들이 함께 사는 밭이어야한다고 말한다. 박멸하지 않아도, 인간을 먹을 만큼의 식량을 얻을 수 있다고. 퇴비도 인위적으로 다른 곳에서 들여올 필요가 없고, 오로지 이만큼의 땅에서 나온 풀들과, 우리 집 가축과 사람이 싸는 똥과 오줌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땅에 아무런 것도 하지 말자고, 땅을 갈지도 말고, 잡초를 뽑지도 말고, 퇴비도 사다 뿌리지 말고, 농약을 하지도 말고, 그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되 최소한의 참견으로 식량을 얻자고 한다. 그게 인간을 위해서도 자연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지금의 관행농은 너무 많이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망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이 말들이 전부 옳은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땅에서 식물이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원리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자연과 사람을 덜 해롭게 하며 식량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참견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관행농이 자연을 해치는 데에 많은 부분 일조하고 있으며, 유기농, 친환경, 무농약은 좋은 타협점이지만 그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연을 거스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농의 메시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직접 해보면서 더 깨닫고 배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이어야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더 질문하고 생각해봐야겠다. 자연은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혹은 인간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신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존중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자연농 #유기농 #친환경 #무농약 #관행농 #농사에대한고민 #가와구치요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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