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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주방 보조 - 첫 도전

by 틔움 2021. 2. 22.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요식업이란 음식과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로 여겨졌다. 모든 사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 점이 굉장한 매력처럼 느껴졌다. 실은 글을 쓰는 것도 연결되고 싶어서이고, 식당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연결되고 싶어서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연결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저 틈만 나면 연결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가 꼭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졸업한 후에 10여 년 정도는 전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에 도전했다. 사회복지사가 그랬고,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하거나 여성 인권과 관련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한 것이 그랬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분야인 요식업과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할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다른 이에게, 동물에게, 자연에도 이로운 혹은 덜 해로운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바람은 언제나 있긴 하다. 농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는 게 엄청나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결과는 예측 불가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서 수확한 작물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식량으로 쓰인다. 어렵겠지만 농사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 또한 성장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 일하고, 수확물을 얻는다는 점에서 일에 대한 기쁨도 분명히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서 작년에 청년농부사관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나란 사람이 농부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 테스트해보고자 6개월의 시간을 들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전업 농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농사는 정말 몸을 많이 써야 하는데, 유기농업은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손이 훨씬 많이 간다. 그렇다고 땅과 생명을 오염시키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며 농사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을 해온 몸도 아닌 데다가 몸이 그다지 튼튼한 편도 아니어서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주말도 없이 매일같이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느라고 몸 이곳저곳이 아픈 분이 많았다. 나는 그분들의 반 정도밖에 일을 안 했는데도 결국엔 몸에 탈이 나서 손 저림이 너무 심각해졌었다. 계속하면 적응이야 하겠지만 굉장히 힘든 미래가 그려졌기에,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전업 농사는 나에게 맞지 않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돈을 좀 모으면 농가 주택에 살면서 텃밭도 꾸리고 자연농법으로 내가 먹을 식물들을 기르고 싶다. 농사에 대한 목표는 그 정도로 수정했고, 이제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남았으니 그쪽 분야도 좀 알아볼까 싶었다.

올해 들어서 비건을 향한 실천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도전을 하고 있고, 동시에 비건 요리도 배우고 있다. 서울에서 친구와 가봤던 비건 음식점은 너무 멋졌고, 전주에도 그런 게 생기면 좋겠고, 내가 해도 재밌을 것 같다. 마침 전주에도 비건 베이커리와 제로 웨이스트 가게 등이 늘어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서 반가웠다. 덕분에 비건 음식과 술을 파는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더 자주 떠올랐다. 일단은 식당 주방 일부터 경험해보고 싶어서 구인공고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었다. 대학에서 요리를 배우고 3년 차 떡 카페를 운영 중인 친척에게 물어보니 프랜차이즈는 소스나 재료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요리를 배우기는 어렵다고 했다. 개인 식당이면서 내 취향에 어느 정도 맞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별로라고 느끼는 식당에서는 별로 일할 맛이 안 날 테니까. 손님도 많고 바쁜 곳이면 좋겠다. 시간을 두고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보는 중에 어제 알바천국에 우리 동네 맛집(손님 많고 음식도 괜찮고 서비스도 좋음)에서 주방보조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쓰여있었다. 오후 1시 반부터 4시 반까지 오픈 타임에 3시간씩, 주 5일. 아직 일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는 생각에 바로 연락을 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을 듣고 후다닥 이력서를 간단하게 써서, 옷장에서 오랜만에 카라 있는 셔츠를 꺼내 입고 머리도 잘 빗어서 단정하게 묶고 면접을 보러 갔다. 걸어서 2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 좀 이상하기도 했다. 맨날 지나다니던 집 앞 가게가 면접 장소가 되다니. 코로나 시대에 맞게 마스크를 쓴 채로 면접은 진행되었다. 일을 조금 배워서 나중에는 저녁까지 일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나도 좋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없냐고 물어서, 혹시 힘이 쎄야하냐고 물어봤다. 사장님은 모든 주방 일은 힘들지만, 중식당처럼 웍을 써야 하는 일은 별로 없고 무거운 걸 들어야 하는 것도 별로 없어서 굳이 비교하자면 힘쓸 일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역으로 힘이 별로 없는 편이냐고 내게 다시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대답하며 땀을 삐질 흘렸다. 출근일은 문자로 연락해주시기로 하고 면접을 마쳤다. 돌아 나오는데 그 질문을 하지 말 걸 싶었다. 일이 힘들까 봐 겁먹고 있는 게 드러났을 것 같아서 후회되었다. 힘들다고 하면 안 할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본 걸까. 그냥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안심되는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긴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식당에서 일해본 적 있으니까 아마 할 수 있을 거예요.’ 정도의 대답을 기대한 것 같다. 후회를 곱씹으며 집에 돌아오니까 그제야 너무 떨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내일모레부터 출근해달라고 문자가 왔다. 이렇게 자유 시간은 끝나는구나, 하루에 3시간, 주 5일 일하는 것뿐인데 족쇄가 채워지는 것 같다. 철컥철컥 소리가 들린다. 이제 글은 언제 쓰고 요리 실습은 언제하고 넷플릭스는 언제 보지.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겠지만, 통장에 돈 들어올 일이 생겼다는 기대감도 슬쩍 든다. 그나저나 요즘 요가도 하지 않고 활동량도 적어서 근육량이 더 적어졌을 텐데, 주방에서 일하려면 어서 체력을 단련해야겠다. 빈야사 요가도 하고 미루고 미루던 근력운동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하나. 나의 저질 체력이 가장 걱정되지만, 일단은 사장님한테 듣고 싶었던 말을 나에게 들려줘야지. ‘힘들긴 하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자. 식당에서 일해본 적 있으니까 아마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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