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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비평문 _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_영화 <노매드랜드>

by 틔움 2021. 11. 25.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영화 <노매드랜드>(클로이자오, 2020)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주연상, 감독상을 휩쓸었다. 주연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력과 클로이 자오 감독의 연출력, 영화 전반적인 작품성까지 두루 인정받았으며 대자연의 아름다움 또한 담겨있어 관객이 감동하기에 충분하다. 노매드(nomad)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유목민혹은 유랑자라는 뜻으로,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을 말한다. 노매드 노동자들은 차에서 살며 일자리를 찾아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 이 영화는 기존의 체제 안에서 더는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어떤 새로운 선택을 하는지 그 길을 따라다니면서 보여준다.

 

전 세계가 통째로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 상황,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더 나은 세상을 말하는 페미니즘을 이유 불문하고 깎아내리는 움직임으로서의 백래시가 그렇다. <노매드랜드>에서 카메라는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초원 사이를 달려 나가는 의 밴 선구자(vanguard)’의 뒷모습을 비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선구자와 함께 어디론가 나아가 탈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위기 속에서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주택시장 붕괴와 맞물려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집값이 급격히 오르자 사람들은 무리해서 부동산에 투자했고, 2008년에 부동산값이 폭락하면서 그대로 빚더미에 나앉는 사람들이 줄줄이 생겼다. <노매드랜드>의 배경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의 미국이다. 주택시장이 붕괴하자, ‘US석고는 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석고보드를 만들던 공장 엠파이어의 문을 닫았다. 엠파이어 광산에서 일하던 남편 , 인사과에서 일하던 주인공 은 하루아침에 일터와 집을 잃었다. 경제 위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2011년 말에 밴에서 살기, 혹은 밴 생활은 이제 유행이라고 선언하고, 그해에만 120만 가구의 주택이 압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이면서 밴 판매량이 24퍼센트 증가했음을 알렸다. 사람들은 집을 포기하고 밴을 사서 길로 나섰다.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자 마음의 안식처이기도 한 집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지만, 지붕과 기둥이 있는 공간인 집을 포기함으로써 다른 방법으로 살아보고자 시도한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이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남편마저 갑작스럽게 암을 앓다가 죽었기 때문에 혼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은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밴을 타고 길을 나선다. 첫 번째 일자리인 대형 쇼핑몰 아마존에서 물량이 급격히 많아지는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임시직으로 일을 마치고 난 후,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경제 위기가 워낙 심해서 일할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날씨마저 너무 추워서 차에서 혼자 지내기가 어려워지자 차라리 따뜻한 남쪽으로 간다. 쿼츠사이트로 가서 친구 린다가 소개한 RTR(Rubber Tramp Rendezvous, 고무바퀴 유랑자 모임)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만난 RTR의 창시자 밥웰스타이타닉호는 침몰하고 있고, 경제 위기는 커지고 있으며, 우리는 평생 죽어라 일만 하다가 들판으로 쫓겨난 가축 신세다. 사회가 우리를 벌판으로 내쫓으면 우린 함께 모여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말한다. RTR 모임은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팔이 불편한 사람의 식판에 음식을 대신 담아주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그들은 사회의 주류 문법과 다른 방식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며,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새로 배우고자 한다.

 

영화의 장면 대부분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핸드헬드 기법이란 카메라를 손으로 직접 들거나 어깨에 메고 촬영해 화면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현장감을 살려 인물의 불안감이나 마음의 동요를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이는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자연을 비출 때는 화면이 카메라를 고정한 채 먼 풍경을 담고, 사람의 얼굴을 비출 때 주로 카메라가 흔들린다. 또한 카메라는 주로 의 입장이거나 혹은 곁에 있는 친구인 것처럼 상황을 비춘다. 달리는 의 자동차를 뒤에서 따라가거나, 보조석에서 운전하는 의 옆모습을 바라보거나, 눈 앞에 펼쳐진 도로를 의 시선으로 함께 보기도 한다.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은 연기자가 아닌 실제 노매드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책 <노마드랜드>(제시카 브루더, 2017)는 작가가 몇 년 동안 노매드 노동자들과 지내며 적은 실제의 이야기이고,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을 연기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실제 노매드 생활을 했다. 이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에 바탕을 둔 내용이기 때문에 카메라의 핸드헬드 기법은 관객이 실제처럼 느끼게 하고, ‘의 곁에서 함께 걷는 친구처럼 그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살피게 한다.

 

과거를 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다

은 과거를 자주 떠올린다. 남편이 생전에 입던 옷을 짐 더미에서 꺼내 입고 길을 떠나왔으며, 친구 린다를 자신의 개조한 캠핑카에 초대해 특별한 수납함과 접시 세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납함은 남편이 사용하던 낚시통을 이용해 만들었고, 그 안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께 선물 받은 단풍 접시 세트가 들어있다. 물건에 얽힌 가족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은 왠지 신나 보인다. 어느 날 저녁에는 오래된 사진들을 꺼내 본다. 부모님과 찍은 사진, 언니와 찍은 사진, 그리고 남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복잡한 표정이 된다. 그리고 친구 스웽키에게 고백한다. 남편이 투병 중일 때 모르핀을 잔뜩 넣어 그를 고통에서 더 빨리 벗어나게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후회가 든다고. 친구는 남편이 어쩌면 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며, 당시에 이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말한다.

 

자동차 바퀴가 펑크나 이 도움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진 스웽키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는 병에 대해 걱정하거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애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싶어 한다. 그저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담긴 여행지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 그곳의 풍경을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내 스웽키는 원하던 대로 기억 속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보고, 그 풍경을 담은 영상을 에게 메시지로 전송해온다. ‘은 그가 계획에 성공했음을 함께 축하한다. ‘스웽키가 죽은 후에 그가 바랐던 것처럼 사람들과 불가에 둘러앉아 그를 추억하며 불 속으로 돌을 던진다. ‘스웽키는 죽고 난 후에도 의 도움으로 생전에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다.

 

린다의 또 다른 절친이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함께 일했고, ‘에게 RTR 모임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으며, 이후에 캠핑장에서도 함께 일한다. ‘에게 일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이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쳐도 모두 받아주며 함께 즐거워하는 친구이다. 언제나 밝은 표정이지만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평생 열심히 일하고, 두 명의 자녀들까지 키워내야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고된 시기를 보냈다. 죽기로 하고 실행에 옮길뻔 했으나 키우는 두 마리의 강아지들을 보고 다시 힘을 내서 살기로 했다. 이제 그의 꿈은 친환경 주택을 만드는 것이다. 재활용 타이어와 병과 캔으로 만드는,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주택을 직접 지어내고 손주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린다은 따뜻하게 안아주며 웃어 보인다. ‘은 친구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각각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들은 친구인 동시에, 혼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선배들이기도 하다.

 

의 여정에도 위기가 생긴다. 차가 고장 난 것이다. 자동차 수리 전문가는 고치는 데에 아주 큰 비용이 드니까 차라리 새로운 차를 사는 게 낫겠다고 하지만, ‘은 이 차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공간이며, 자신에 맞게 정비해온 이므로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차 수리를 위해 당장 큰돈이 필요해진 은 비교적 여유가 나은 언니인 돌리에게 연락하고 그를 찾아간다. ‘돌리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둘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반대의 방향으로 헤어진다. ‘돌리는 집으로 들어가고 은 또다시 길을 향해 걸어간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RTR 모임과 캠핑장 등에서 마주치며 호감을 쌓아왔던 데이브의 집이다. 자식들과 손주까지 있는 그의 집은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데이브의 생활에 들어간 은 왠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는 길 위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진 데이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이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미 노매드의 삶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은 다시 길로 나선다.

 

탈서울을 선택하는 30·40세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도 처럼 위기의 순간에 새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십 대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다가 5년 전 고향 근처인 전주로 내려와 정착 중인 나의 경우도 그렇다. 옛말에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자랐고, 고등학생 시절엔 전주를 떠나 서울에 가는 상상을 자주 했다. 스무 살부터 서울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앞선 문화를 경험했지만, 내가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집값, 높은 인구밀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이었다. 여전히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서울에서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듯하다. 내년 초에 결혼을 앞둔 친구는 혹시 아이 계획도 있냐는 나의 질문에, 대출 혜택을 최대로 받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2명은 낳아야 한다며 농담 섞인 대답을 한다. 서울에서 적당한 크기의 집에서 생활하며 6시쯤 퇴근해 여가를 보내고 싶다는 소망은 이제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서울에서 적당한크기의 집에 살려면 엄청난 부자이거나, 집값을 치르기 위해 여가시간을 포기한채 일에 몰두해야 한다.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서울을 벗어난다. 서울시의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 분석에 따르면, 매년 서울 인구는 10만 명씩 줄어들어 왔고, 지난 11년간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 인구는 연평균 582,000명이다. 서울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 문제로 34.1%의 비율을 차지한다. 급등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 내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다음 경기도로 이주한 뒤 경기도에서도 다시 더 멀리 이사하는 인구 이동 흐름이 나타난다. 탈서울 행렬의 중심에는 비교적 자원이 적은 30·40세대가 있다. 노매드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왜 굳이 집에서 살아야 하죠?” 라고 질문을 던지며 밴에 올라탄 것처럼, “왜 굳이 서울에 살아야 하죠?”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 주변에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금은 지역으로 이주해 사는 친구들도 있고,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계속해서 사는 친구들도 있다. 한때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것이 낙오인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역에 사는 것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자 여기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선택이다. 누구라도 낙오될 수밖에 없고, 그 낙오를 이용해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부를 누리게 되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잘못하지 않고도 나락으로 떨어진 듯 막막한 환경 속에 놓일 수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그런 환경에 놓인 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또 넓은 자연이 주는 위안 속에서 한 발자국 더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과정을 보여준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표정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떠나는 의 뒷모습을 보면서 응원하는 마음과 동시에 나도 함께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고, 그 길이 좋은 곳일 거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막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무엇이든 믿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쓴이 소개

 

삶에서 책과 영화를 빼놓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이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만 마음에 들여놓을 수 있다. 성인이 된 후로 서울에서 9년을 살고 전주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지역에도 내 마음에 들여놓을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지역의 예술작품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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