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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_ 지역에서 비혼여성으로 살아가다

by 틔움 2021. 11. 25.

나에게 비혼이란

사실 저는 스스로를 비혼이라고 생각하기가 왠지 어려웠어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독신주의라는 말과 비혼주의라는 말의 의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핏 보면 둘이 비슷한 말 같지만 독신은 혼자 사는 거고 비혼은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비혼이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고, 그 방식은 결혼이 꼭 아닐 수 있으니까요. 저는 현재는 1인 가구로 혼자 살고 있고, 이 생활에 만족하지만 평생 지금처럼 지내고 싶지는 않아요. 반려동물과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친구와 같이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언젠가는 마음이 바뀌어서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미혼이라는 말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이 발표를 준비하며 사전을 찾아보니까 그렇게 나와있더라고요. 미혼은 아직 혼인하지 않은 상태를 뜻해서, 아직은 결혼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꼭 해야할 일로 결혼을 여기고, 비혼은 그저 혼인 상태가 아님을 말하므로 그저 결혼에 대한 여부 상태만을 일컫습니다. 결혼을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 가능한 일로 여기는 단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왠지 비혼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웠어요. 비혼이라고 하면 평생 결혼같은 것은 꿈도 꾸면 안되고, 오로지 혼자 살아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고, 좁은 시야로 생각해온 것 같습니다.

제가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현재의 나에게 더 집중하고, 현재 내가 맺는 관계들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결혼하지 않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아야만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험 안에서는 그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좋은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반대로 좋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괴로워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것을 좇느라 더 이상 시간을 쏟지 않아도 괜찮다, 결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좋다.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게 되었어요. 구체적으로 그렇게 된 이유나, 비혼으로 살면서 느끼는 경험과 고민들, 또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 좀 더 나눠볼게요.

 

 

지역에서 비혼으로 살아가기

요즘은 비혼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미혼이라는 말보다도 비혼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듣는데요 물론 제 주변에 비혼이 많아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티비를 봐도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애타게 짝을 찾지 않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집중하며 그 생활에 만족해요. 그렇지만 현실은 티비 속 세상보다 더 느리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여전히 비혼에 대한 많은 편견이 존재해요. 결혼하는 건 당연하지만, 비혼은 뭔가 더 대단한 이유가 있을 것처럼 생각되어요. 저는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결혼을 싫어하지도 않고요, 그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온전히 저로 살고 싶고, 그렇게 살 때에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왠지 결혼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야할 것 같은, 비교 선상에 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비혼이라서 더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둘이 다른 편에 서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결혼을 하든 비혼을 하든 어떤 인생에건 행복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어떤 생각을 했을 때 그게 차별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에, 구분하기 위해서 쓰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반대의 경우라도 자연스러운지 생각해보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결혼한 사람은 행복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후회될 때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비혼이라 행복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후회될 때도 있고, 결혼한 사람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게 결혼의 경우에는 자연스러운데 비혼의 경우에는 조금 어색했던 것 같거든요. 이 지점이 차별의 지점일 것 같아요.

제가 비혼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한 것만 해도 그래요.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혼이 두려워서 결혼을 피하지 않잖아요. 물론 결혼 상대자로 그 사람이 적절할까에 대해서는 당연히 고민할 수 있겠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이혼하는 일이 혹여나 생길까봐? 결혼하길 꺼리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거든요. 근데 왜 저는 나중에 혹시라도 결혼하게 될 상황이 두려워서 비혼을 받아들이기가 조심스러웠을까요. 아마 비혼은 자주 설명을 요구받기 때문일 거에요. 불과 얼마 전인 올해 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일터에서 만난 분은 저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분은 그래 결혼해봤자 고생이니까 그냥 혼자 사는 게 맘편해~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연애는 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기도 했어요. 안 하고 있다고 하면,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도 묻고, 자기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은 척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왜 나는 결혼하지 않지? 하고 저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정말 혼자 사는 건 맘이 편한가? 연애는 왜 안할까? 등등 대해서도 저에게 물었습니다. 사실 진짜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다들 저렇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런 게 당연하다는 듯이 사는데, 왜 나는 그렇지 않은 걸까. 왜 나는 일반적이지가 않지? 라고 생각하면서 저를 꾸짖는 마음이기도 했어요. 길을 잃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혹시 결혼을 안해서 내가 외로운 건가? 결혼하지 않으면 더 성장하지 못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며칠씩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결혼이 내 삶을 구원해줄 거라는 생각은 그저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결국엔 깨닫게 돼요. 제가 비혼을 선택한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물으면 저도 자꾸 의심이 생겨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제 중심이 단단하면 흔들리지 않을텐데 저는 그렇게 단단하지는 못한가봐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항상 그런 질문은 비혼인 쪽에만 던져질까요? 저는 그들에게 왜 결혼을 선택하셨냐고 묻지 않고, 결혼하길 정말 잘하셨네요 라고 말하지도 않고, 그들에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데 왜 저만 그런 질문을 항상 받을까요. 솔직히.., 정말로 궁금해서 물은 건지도 의문입니다.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질문같지 않아서 진지하게 답변하기도 곤란하고요.

비혼으로 산다는 것은 외부의 편견과 제 안의 편견이 힘을 합쳐서 저를 마구 찌르는 과정을 계속해서 거쳐가야하는 일 같기도 해요. 언젠가 제 내면이 더 단단해지면 더 이상 그런 편견에 휘둘리지 않을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워요.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이든지 존중하고, 상대의 선택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자세를 지니기 위해서는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은 이 자리에서 비혼으로서 저의 고민을 이야기를 하는 일이 무척 떨리고 두려웠는데요,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런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마이크를 잡게 되었어요. 비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제 안의 편견이나, 외부로부터 경험했던 편견의 경험들을 제가 먼저 꺼내놓으면 다른 분들도 함께 자신 안에 있는 편견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함께 노력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비혼으로 관계맺기

저는 서울에서 이십대의 대부분을 지냈기 때문에, 다시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관계에서의 변화가 크게 생겼었어요. 그 변화 중 하나는, 서울에 살 때는 열심히 연애를 했었는데 지역으로 오고나서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아 딱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서울에서는 제가 너무 외로워서 자꾸 연애관계 안에서 제 안의 부침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서울을 떠나 돌아왔을 때에는 부모님 집으로 합가를 하기도 했었고, 또 고향으로 다시 내려오니까 서울 살 때처럼 못견디게 외롭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비혼으로 살게 된 데에는 이 부분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연애를 멈추면서부터 오히려 더 깊고 진정성있는 관계 맺기가 가능해졌고, 특히 여성들과 함께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순간들이 저에게는 되게 새롭고 즐거웠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 그러니까 이십대에는 제 인생의 관계맺기가 연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지역에 온 후로는 친구를 중심으로 변화했어요.

처음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초기에는 매주 서울에 다녀야 했습니다. 친구들도 다 서울에 있고, 동호회도 있고, 배우고 싶은 강의도 서울에서 열렸고요. 거의 일 년 정도는 서울에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협동조합을 알게 되면서는 비비에도 조금씩 왕래를 했어요. 제가 관심있어하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열렸거든요. 저는 그 중에서 작가와의 만남에도 참여하고, 소설 읽기 모임에 나가고, 타로상담을 배우게 되었어요. 비비에 처음 갈 때만 하더라도 저는 비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입장이었고, 그냥 친구 사귀고 싶어서 다녔어요.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언제나 환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또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다가 비비에서 저에게 괜찮을 것 같은 일자리가 있다면서 한 번 지원해보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성평등플랫폼, 지금은 성평등전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요, 무튼 그 곳에서 일할 기회도 생겼었고, 거기에서 일하면서 좋은 동료들을 무척 많이 만났습니다. 이제는 전북에 산지도 5년 정도 되었는데요, 그 동안 제 곁에는 좋아하는 친구들이 여럿 생겼고, 제 전주생활에 든든한 자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따가 뒤에서 친구들과 하는 모임들에 대해 조금 더 설명 드릴게요.

지금은 삼천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삼천 주공 아파트에는 비비를 기반으로 연결된 스무명 이상의 비혼여성 분들이 살고 있어요. 작년 여름까지는 저는 다른 동네에서 혼자 살았었는데요, 여기로 이사오면서부터는 동네 친구들이 생겨서 정말 든든하고 좋아요. 단톡방도 있어서 가끔 물건 같은 것을 나누기도 하고요, 먹을 것이 많이 생기면 나누기도 하고요, 같은 아파트이다보니 집에 문제가 생기면 단톡방에 알리고 고민을 나누는 경우도 있고요. 시간이 맞으면 같이 산책을 하기도 하고요. 서로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게 있으면 참여하면서 느슨한 연대 속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비비 외에도 친구들과 이리 저리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재밌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제일 자주 만나는 모임은 단감모임인데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심리서적을 함께 낭독하고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에요, 마음챙김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고, 공감받을 수 있고, 또 공감해줄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모두 비건에 관심이 있어서 함께 비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요, 올 여름에는 비건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실컷 수다떨 수 있는 모임도 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종종 만나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나누는 자리를 가져요. 10월 초에는 한 친구의 서른번째 생일 파티에 가서 꼬박 열두시간 수다를 떨기도 했어요. 저녁 6시에 만나서 새벽 6시에 헤어졌답니다. 하하. 제가 평소엔 체력도 별로고, 집중력도 길지를 못한 편인데 이 친구들과 만나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헤어지는 게 너무 어려울 정도로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요. 각자 본인 사업을 하고 있거나, 또 준비 중이거나,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친구들이라서 그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요.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친구들이라서 만나서 얼굴 보고 같이 웃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욱 소중해요.

삼한사온에는 올 여름부터 함께 했는데요, 아까 설명들으신 것처럼 비비 안의 소모임이에요, 예전부터 관심있게 눈여겨 보고 있다가 이번에 모집이 열렸을 때 잽싸게 합류했습니다. 전부터 생각했거든요. 비혼이라는 이슈로 뭉쳐서 이야기하고 또 이것 저것 함께하며 놀 수 있는 작은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고요. 지난 세달 정도 동안 비혼 수업이라는 책을 가지고 낭독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비혼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각자의 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생활팁을 공유하기도 하고,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혼자 고민할 때는 너무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문제들도 함께 나누면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가벼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위에 나열한 것처럼 저는 비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이고, 비건지향인인데요, 저는 저의 정체성들이 너무 소중하지만, 때때로는 이런 점들 때문에 주위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 곁의 친구들은 제 이야기를 편견없이 보려고 노력해주는, 저를 저로 봐주는 친구들이에요. 그러니까 더더욱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중한 것 같아요.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으니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죠. (친구들도 부디 그렇게 느끼는 거면 좋겠네요...)

위에서 말한 부분들과 조금 다른 부분으로, 삶에서 타인의 힘과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기분 좋게 만나서 노는 거 말고, 정말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관계요.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일 때도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 연대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실례를 들어서, 제가 올해 초에, 일을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일하면서 못받은 주휴수당도 있고 등등 받아야할 돈이 있어서 사장님한테 찾아가려는데 혼자 가기가 겁나더라고요. 친구에게 부탁해서 같이 가달라고 했어요. 고용노동부에 조서를 작성하러 갈 때에도 친구에게 부탁해 함께 갔고요. 혼자서였다고 해도 할말을 하러 가기는 했겠지만 정말 외로웠을 것 같거든요.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그렇게 든든하고 덜 외로운 일인줄을 그때처럼 마음 깊이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관계의 힘에 대해서 어느 때보다 많이 공부하고 연습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늦은 밤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른다거나 번호키를 누른다거나 그런 일도 있잖아요. 왠지 여자 혼자 사는 것을 알고 해코지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자면서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기도 하고요. 아플 때 약이나 죽을 사다줄 누군가가 필요하기도 하고 병원에 함께 가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해요. 가족이 없는 저에게도 느슨하게라도 연결되어 서로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럴 때 친구와 서로서로 돌봄 노동을 기꺼이 해주기도 합니다. 비혼에게는 관계가 무척 중요해요. 같이 놀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 함께 배우는 학인이기도 하고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이기도 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고요. 결혼이 없는 삶은 얼마든지 상상가능하지만, 친구들이 없는 삶은 절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이제 제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로 살아가기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사실은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너무 외롭고 불안할 때도 있어요. 여전히 비혼은 정상성을 벗어난 범주로 분류되고, 자다가 깨서 너무너무 외롭고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꿈에서는 우리집에 누군가가 쳐들어오는 꿈을 꿔요. 도둑이 들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도저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제가 저의 보호자인 척 하고 가슴을 토닥토닥거리며 괜찮다, 괜찮다, 잘 하고 있다. 내 존재 자체를 믿는다 하고 말해줍니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멋지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세상에서 비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고, 저도 그 시선을 내재화하고 있는 사람이므로 차별을 재생산합니다. 어떻게 해야 차별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혼자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결혼한 사람들이 다 다른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고 모두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 듯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비혼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이유와 풍경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혹여나 오늘 제가 하는 말들이 비혼은 그렇다더라 ! 라고 여겨지실까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덧붙이는 말인데요, 그냥 저라는 사람의 고유한 비혼라이프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분들의 고유한 비혼 라이프를 들을 기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내용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 주최한 '평등의 이어말하기 in 전주 - 차별없이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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