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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글

나누기 전에 갖춰야 할 것

by 틔움 2022. 5. 2.

중고등학교 시절, 몇 년 동안 수학과외를 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대학생이었고, 고향과 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이십대 초중반이었던 선생님은 나에겐 되게 나이도 많고 똑똑한 어른처럼 여겨졌다. 과외시간이 저녁시간과 맞물리는 때가 대부분이어서 우리 부모님은 그럴 때마다 과외선생님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청했다. 나는 사실 그게 싫었다. 오래되고 단정치 못한 살림살이를 보이는 것이 창피했다. 테이블이 아니라 밥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서 먹는 것도 부끄러웠다. 다른 집처럼 밑반찬이 많은 편이 아니고, 찌개나 조림 같은 단품 요리로 밥을 먹어서 밥상이 유난히 단촐해 보이는 것도 싫었다. 나는 최대한 선생님한테 깔끔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체면을 지킨달까, 이미지 관리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이 갑자기 말했다. 내가 너희집에서 밥 먹는 게 싫냐고. 그냥 밥 먹게 해주면 안되냐고. 그 말이 나는 너무 충격적이었던 게, 선생님이 당연히 우리집에서 밥먹는 걸 불편해하고 싫어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부엌에서 초라한 반찬에 밥을 먹는 것도, 할아버지까지 계신 식사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도 어색하고 불편해할 거라고 굳게 추정하고 있었다. 괜한 오지랖으로 선생님을 굳이 불편하게 한다고 부모님께도 싫은 티를 냈었다. 선생님은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집밥이 그리웠을 수 있다. 내가 먹는 밥상을 함께 먹고 싶어서, 같이 먹자고 부르는 우리 부모님의 청이 고마웠을 수도 있다. 아니 고마웠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함께 밥을 먹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갓 지은 밥에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은 식당에서 파는 음식보다 훨씬 맛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우리집 밥상이 좋은 걸 몰랐다. 자취하는 대학생은 항상 집밥이 그립다는 걸 몰랐다.

 

그냥. 왜 오늘 이 기억이 떠올랐나면 여전히 내가 그러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부끄럽고 부족하고 창피해서 꺼내놓지 못하고 꽁꽁 싸매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 원하는 것일 수 있다. 이정도로는 너무 부족하니 적어도 저만큼은 잘해야 다른 사람에게 꺼내놓을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그 마음이, 정말로 다른 사람을 위한 걸까. 그 기준이 높은 이유는 뭘까. 잘하지 못해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는 상상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별로인 모습을 보일 바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내가 멋지고 잘하고 꽤나 괜찮은 결과를 보여줘야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너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믿음이다. 못하는 것을 나눠주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내가 만든 음식이 손뼉칠 정도로 맛있지 않아도 친구에게 내어주고, 잘보이고 싶은 욕심에 잔뜩 경직되고 힘이 들어간 글이라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탱고를 궁금해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걷기라도 가르쳐주고, 탱고 음악에 맞춰 근사한 척하며 함께 걸어보고. 좋은 친구, 좋은 동료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완벽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친구보다는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보일지라도 기꺼이 함께 해주는 친구에게 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잘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잘나지기보다는 잘난 '척'을 내려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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