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ur place/비건지향

두 번째 팝업을 마쳤다.

by 틔움 2021. 12. 22.

 


비건 피자 팝업 당일 아침, 차량 지원을 해주기로 한 팀원의 차가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많은 짐을 택시에 싣고 혼자서 날라야했다. 새벽에 버섯작업 마치려는 목표는 반밖에 달성하지 못했고, 버섯을 바리바리 싸들고 에어프라이까지 싣고 현장에 갔다. 지갑도 놓고나올만큼 정신 없는 출발이었다. 혼이 쏙 빠졌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님은 골목까지 들어가달라는 요청에 아무말 없이 행사 장소 문앞까지 차를 대주시고 짐을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셨고, 배터리가 방전된 차는 빠르게 도착한 서비스 차량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또다른 팀원이 내가 주방일에 전념할 수 있게 공간 셋팅을 혼자 도맡아 해주고, 무겁디 무거운 오븐 두개를 친구들이 끙끙대며 날라준 덕분에 버섯 작업도 무리없이 금세 마쳤고, 첫 주문시간에 맞춰 피자가 나올 수 있었다. 오전 내내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오히려 피자 조리를 시작하고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니 긴장이 풀렸다.


20분 당 두 판의 피자를 만들고, 1~2명의 손님을 맞이하는 여유있는 시간 셋팅 덕분에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첫번째 팝업때는 정말 바쁘게 세네시간이 흘러가서 여유가 전혀 없었던 점이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일부러 좀 여유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그러길 아주 잘한 것 같다. 나의 지인이거나 혹은 다른 팀원들의 지인들이 손님인 경우가 반 정도였고, 의외로 잘 모르는 분들도 반 정도의 비율을 차지했는데, 이번 팝업에서 그 분들과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모두의비건이 추구하는 게 비건 음식을 만들고 전하는 행위를 넘어서, 비건을 주제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에, 각자의 비건 라이프나 지향점에 대해서 이야기나누고, 실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정보를 함께 나누는 대화가 오고갈 때에 마음이 뿌듯하고 보람찼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걷는 길을 빠져나와서 조금 다른 길로 걷고자 하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인식된다. 비건이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그러므로 비건 선택지가 늘어나고 비건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는 흐름으로 여겨져 반갑지만, 여전히 비건은 비주류이고 비건에 대한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비건지향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오롯이 개인이 내면의 갈등을 끌어안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거나, 사람들과 회식을 할 때에 비건 선택지가 적거나 아예 없다. 그럴 때 주변에 동료가 있으면 덜 외롭고, 더 해볼 수 있는 힘이 나기도 한다. 모두의비건이 그런 과정을 겪는 사람들의 곁에 함께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나의 곁에 그 사람들을 두고 싶은 걸 수도 있다. 혼자서는 너무 어려우니까 우리 같이 해보자. 하고 손내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메뉴였던 비건버섯피자는 많은 공을 들여서 연구하고 테스트해서 만든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팝업에 와주셨던 몇몇 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아쉬운 점들이 발견되었다. 빵이 약간 덜 익은 것 같다는 평가와, 버섯이 커서 자꾸 굴러 떨어져서 먹을 때 불편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같이 올릴만한 야채를 추천해주시기도 하고, 토마토 소스를 조금 더 새콤하게 해도 좋겠다고 취향을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도우를 조금 더 얇게 하고, 잘 어울릴만한 야채를 함께 올려서 다시 테스트하고 보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드는데, 아직은 팝업의 여파로 피곤이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1월에 기회를 엿보려고 한다. 조금 더 맛있는 피자를 만들면 작게라도 다시 팝업을 열어 사람들에게 맛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할 때 정말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아쉬운 점에 대한 피드백은 솔직히 마음이 아프기도 한데, 너무너무 귀하고 감사한 조언들이라서 새겨들으려고 노력한다. (또 신기하게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피드백은 별로 없다. 나도 언뜻 생각은 했지만 그냥 지나쳐버린 지점들을 떠올려보면 피드백들과 신기하게 맞물린다)

 



올해 두번의 팝업을 했다. 그것도 2달 텀으로. 팀원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지난 여름, 함께 심리서적을 낭독하기 위해 만나던 친구들이 나에게 비건 팝업 프로젝트를 한 번 해보라고 했고, 곁에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여기까지 왔다. 모두의비건을 하면서 개인적인 성장도 있었고, 우리의 관계도 여러가지 상황을 만나고 갈등을 겪어내면서 조금씩 서로를 더 알게 되고 가까워졌다. 여성을 돕는 여성들. 그 문장이 와닿는 경험을 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편하거나 좋기만하진 않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준비과정 내내 자신없어 하고 어려워하고, 요리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라 무척 해메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또 돈이 전혀 안되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위한 노동이 자기착취 혹은 동료 착취로 이어지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힘들 때 서로의 힘든 마음을 꺼내고 털어놓을 수 있으며,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겨간다. 심리서적을 함께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려 노력했던 과정이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