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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제가 살고 있어요

틔움 2022. 12. 4. 11:08


“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학교에 다닐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편치 않은 기분을 느낄 때면 절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사실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집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몸이 쉬는 곳이지만 정신이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뭐랄까, 나의 일부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집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겐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으니 이 각박한 세상에서 겪는 아픔들이 나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까 적당한 고난쯤은 마주치더라도 아늑한 내 공간으로 가서 충분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으리라! 바깥 세상이 전부처럼 느껴질 때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폭신한 상상 속 소파에 정신을 눕혀도 본다.

내가 사는 집은 전주에 위치한 공공 임대아파트이다. 무주택자이면 누구나 입주 신청을 할 수 있고, 자산과 소득 기준을 통과하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거주할 수 있다. 덕분에 빌라의 원룸을 전전하며 자취하던 내가 널찍한 베란다와 도시 전망을 갖춘 아파트에 혼자 살 수 있게 되었다. 전세금은 대출받고, 차상위계층으로서 주거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공짜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어서 여기저기 페인트도 벗겨지고 낡은 아파트이지만 꽤 관리가 잘 되고 있어서 복도며 엘리베이터가 깨끗하다. 얼마 전에는 우리 동 앞 공터에 인조 잔디가 푸릇하게 깔리고, 그 위에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었다. 종종 그곳에서 허리 돌리기나 팔운동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이웃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기도 한다. 동네에 오래된 아파트들이 많아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고, 오래된 상점들도 많다.

2년 반 전에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사실 이 집을 좋아하기 어려웠다. 난생처음으로 아파트 임대계약서를 쓰고,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때는 새로운 집에 대한 설렘도 있었지만, 막상 낡고 오래된 집을 마주했을 때는 걱정이 되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방범창, 욕조 바닥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 입주 청소를 했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는 쿰쿰한 냄새까지. 지난날에 좋은 집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잠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삶의 터로 삼고 싶은 곳이었기에 부족한 점이 더 아쉽게만 느껴졌다. 주변친구들은 하나 둘 씩 결혼하고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데, 나는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고, 또 입사하는 조직마다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며 서른 중반까지 여전히 새로운 삶의 길을 찾겠다고 헤매고 있으니, 그 결과가 이제야 실감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게 사회에서 낙오된 자의 서러움인가 싶기도 했다.

방범창의 벗겨진 페인트칠과 욕조 바닥의 얼룩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니 또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졌다. 냄새는 관리사무소와 몇 번을 실랑이하다가 해결했고, 가구와 가전을 최대한 화이트와 우드톤으로 맞춰서 나름 아늑하게 꾸미고, 방문마다 손잡이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하지만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양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이었다. 온종일 집에서 지내다 보면 옆집에서는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낑낑거리기도 하고, 흥분해서 뛰기도 하고, 늑대처럼 하울링을 하기도 했다. 반대쪽 옆집에서는 부부 싸움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 집은 한여름에 현관문을 열고 지내는 편이어서 고함이 귓가를 때려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도 다 들렸다. 혹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에 말할 엄두는 잘 나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면 뻔히 나인 줄 추측할 수 있을 테고, 여자 혼자 산다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2년 반이 흘렀다. 변화가 있다면 우리 층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화 속 캐릭터를 소개하듯이 그들에 대해 적을 수 있는 정도이다. 말도 제대로 나누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은 가까운 사이처럼 느낄 때도 있다. 우리 층에는 6개의 집이 있고 일자형 복도로 연결되어있다. 여섯 가구 중에 한 집만 빼고 다 1인 가구이다. 감각이 예민한 편인 나는 자려고 누우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올해에는 자격증 준비를 하느라 거의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복도 쪽 창문을 열어두고 책상에 앉아있으면서 이런저런 이웃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 엿들은 것은 아니다! 날이 더워서 창문을 닫을 수 없었고 눈도 밝고 귀도 밝고 냄새도 잘 맡는 나에게 복도의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들렸다.

601호에는 40대 남성이 산다. 그 집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몇 번 있는데, 복도 쪽으로 문이 나 있는 보일러실에 쓰레기를 넣어두고 버릴 때가 되면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몇 주 동안 다 먹고 난 배달 음식 용기를 집 앞에 두기도 하고, 요새는 다 차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며칠 째 복도에 나와 있다. 그래서인지 601호를 생각하면 쓰레기봉투가 먼저 생각난다. 602호에는 20대 후반의 남성이 산다. 그와 이야기해본 적은 딱 한 번인데, 저녁 먹고 쉬고 있을 즈음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더니 택배가 없어졌다며 나에게 행방을 아는지 물어봤다. 중국에서 주문한 해외 배송 택배이고 자신에게 엄청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나는 602호와 보일러실을 함께 쓰고, 택배기사님은 주로 보일러실에 택배를 두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택배함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몇 주 후에 보일러실에 중국에서 온 물건이 도착해있는 것을 보고 누명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604호에는 50대 남성과 여성, 20대 남성이 함께 산다. 앞에 적었던, 싸움 소리가 자주 들리는 집이다. 고양이랑 둘이 살기에도 가끔 좁게 느껴지는 집인데, 인간 셋이 살면 부대껴서 싸움이 절로 날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때마다 불안했지만 이제는 싸움이 시작되면 창문을 겹겹이 닫고, 시끄러운 댄스 음악을 틀고 볼륨을 높인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가정에 평안함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 층의 평안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605호에는 연세가 꽤 지긋하신 여성 어르신이 사신다. 보건소 직원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데, 어르신은 귀가 어두우신지 문을 열어주기까지 꽤 시간이 걸려서 초인종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오래 들린다. 다행스럽게도 결국에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편이다. 마지막 집인 606호에는 50대 여성분이 사시는데 우리 집이랑 가장 먼 집이라 그런지 소리가 들린 적은 없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걸음걸이가 빠르시고, 항상 잘 차려입고 계시는 꼿꼿한 분으로 보였다.

사실 여기에 적은 내용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추측이다. 혼자 사는 거로 추측했지만 내가 모르는 동거인이나 반려동물이 있을 수도 있고, 가족으로 예상했지만 가족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들의 일상 속 루틴과 연령대와 성별과 말투, 집에 드나드는 사람, 그런 게 이미 파악되고 정리되어있다. 우리 집과 단지 하나 혹은 몇 개의 벽을 넘어 아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때 나는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세계가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모르는 존재는 두렵기도 하고, 때때로 나에게 주는 불편함이 그 존재의 전부가 되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도 쉽다. 어쩌면 그런 괴로운 감정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층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파악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 층에 사는 이웃의 모습이, 그들이 집에서 지내는 풍경이 상상 가능해지면서 스트레스를 조금은 덜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음이 들리면 마치 공격받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저러지? 나라면 안 그럴 텐데! 왜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까?’ 하지만 알게 되면서 그 사람의 사정으로 읽히게 되는 부분도 생겼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이웃으로 그려질까? 603호에 혼자 사는 여자는 가끔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가끔은 친구들을 데려와 새벽까지 웃고 떠들며, 기름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음식을 해 먹고, 밤에는 방울 소리(고양이 장난감 소리일 뿐이다)가 들리고, 젊은 사람이 거의 집에서 머무르며 뭘 먹고 사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