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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_여섯 살의 나와 함께 살기

틔움 2021. 2. 18. 16:02


다섯 살 무렵에 우리 가족 첫 사진을 찍었다. 가족 모두가 분주하게 준비하고 읍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이상하게도 사진 속 내 얼굴은 울상, 오빠들도 전혀 웃지 않고, 엄마와 아빠도 옅은 미소를 띠고는 있지만, 왠지 울상이다.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그날 엄마는 이혼하자고 마음을 먹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가족사진 찍기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집에서 싸움과 큰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여섯 살 무렵에 내가 옷장 안에 들어가서 울고 있었다. 부모님이 크게 싸우고 있었고, 언뜻 아빠가 옷걸이로 엄마를 때리는 걸 본 것 같다. 엄마는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아빠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른 척하고, 작은오빠는 “제발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말라”는 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고 자전거를 타고 휭~ 나간다. 큰오빠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 다른 방에서 울고 있다. 불안하고 무섭고 엄마가 걱정되지만 싸움을 말릴 힘이나 용기가 없어 무기력함만 느끼는 상황이 정말 싫다. 지긋지긋하다.

상담 시간에 선생님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자 그때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선생님의 권유로 기억 속 장면으로 가서 어린 나를 만나보기로 했다. 실제 내 몸은 상담 중인 방에 있지만,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인, 내 집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나도 눈을 감고 여섯 살의 기억을 부른다. 선생님의 손이 내 등에 올려져 있어 따뜻한 온기가 전달된다. 서른세 살의 나는 여섯 살의 내 곁으로 다가간다. 어른들의 싸움 소리에 괴로워하며 울던 어린이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갑자기 너는 누구냐’는 듯한 눈빛으로 경계한다. 하지만 내 얼굴이 자기 얼굴이랑 너무 닮아서 경계를 쉽게 푸는 것 같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은데 나랑 같이 밖에 나가볼래?” 어린이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린이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신발을 신고 타박타박 걸어서 집 앞 슈퍼에 간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서 어린이와 나눠 먹는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서 어린이는 눈물 자국이 얼룩덜룩한 채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까 옷장 속에 있을 때보다 조금 가벼운 표정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어린이의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 정말 힘들겠다. 언제든 갑자기 싸움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너 기분 살펴주는 어른도 하나 없고, 오빠들도 옆에 있어 주지 않고, 작은오빠는 화가 나면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 너를 때리고 말이야. 정말 네가 외롭고 힘들 것 같아.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도 돼. 내가 옆에 있어 줄게.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저 싸움은 어른들의 일이니까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볼 필요는 없어. 너는 아주 특별하고 귀한 사람이야. 어른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너를 잘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네가 힘들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는 텔레파시를 보내기만 하면 내가 얼른 찾아올게.” 여섯 살의 나를 만난 이후로, 그 기억은 조금 바뀌었다. 둘이 함께 울었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걸어 나갔던,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도 같이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린이는 서른셋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자기 탓을 많이 하면서 자랐다. 가족들의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찾으면서, 가족들의 감정을 살피느라 자신의 감정을 뒷전인 채로 참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목이 쉬고 눈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화를 내며 울었다. 그 울음을 가족들에게 들려줄 때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날카롭게 들기도 했다. 그리고 복수심은 가족에게만 향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향했다. 나를 할퀴거나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고, 꼬집거나 물기도 했다. 내 감정을 살펴주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상대를 기쁘게 하는 데에 몰두하고, 그 보상을 상대로부터 받고자 마음 깊이 바라고, 내가 바라던 반응이 오지 않으면 깊이 상처받았다. 가끔은 상처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이렇게 상처받았다고 말하면서 화를 내고 울고 싸웠다. 엄마가 아빠와 싸울 때 했던 것처럼 했다.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관계에서도 편안함이나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종결을 한주 앞두고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앞으로 여섯 살의 어린 자신을 데리고 살아야 해요. 잘 달래면서 필요하다면 훈육도 하고요.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그 말을 여섯 살의 나에게 하면 어떨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말로 바꿔보세요. 진짜 아이를 양육하는 거로 생각하셔야 해요.” 갑자기 아이가 생긴 기분이 당혹스러웠지만 좋은 연습이 될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상담을 마친 어제 오후부터 내 옆에는 여섯 살의 어린이가 함께 다닌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필요하면 내가 오겠다고 말했을 때는 지금의 내가 어린 나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어린이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쪽은 서른세 살의 나인 것 같다. 그 어린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여섯 살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이에 걸맞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내 존재를 알아달라고 울며불며 호소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양육자가 되어서 내 마음을 살펴주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아이의 마음을 살펴주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뭔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잘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의 아이도 나이를 먹게 될까. 스무 살이 되어 독립시킬 날도 올까. 그렇지만 마음을 급하게 먹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