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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찾아 헤메다

틔움 2021. 2. 4. 14:40


햇볕을 쬐고 싶다는 느낌이 요즘처럼 간절하게 든 적이 있었나. 나는 평소에 빛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때면 형광등을 거의 켜지 않는다. 낮에는 은은한 햇빛으로 생활하고 밤에는 따뜻한 색감(약간 노란 빛이 도는)의 조명을 켜고 생활한다. 그런데 일주일 전쯤이었나. 어둑한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의 햇빛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며, 저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마음껏 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빛을 원하는 것 같았다. 지난 2개월 정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고, 낮에는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은 날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지낸 탓에 몸속에 햇빛에너지가 고갈되었나 보다.
지난 주부터 빛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일단은 낮에 산책하러 나간다. 장보기도 낮에 한다. (장보기 겸 산책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낮에 햇빛을 찾아다니면서 알아차린 건데, 도시의 길은 좁고 건물은 4~5층 정도로 높기 때문에 길에 그늘이 져서 햇빛을 발견하기 어렵다. 빛의 조각들만 보이는 데 그걸 따라다니다 보면 감질나기만 한다. 그리고 겨울 외투를 입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니 햇빛과 만날 수 있는 피부가 별로 없다. 그저 패딩이 은근하게 데워오는 느낌을 등에서 받을 뿐이다.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도 몸에 햇빛에너지가 쌓일까?) 우리 집에서 빛이 들어오는 시간은 아침 해가 뜨는 7~8시부터 10~11시 정도까지이다. 9시가 넘으면 베란다에서만 햇빛을 만날 수 있다. 어제는 9시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아침거리를 챙겨 베란다에 나가 책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얼굴에 직사광선이 내리쬐는데, 그저 햇빛을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삼십 분 정도 있으니까 비로소 빛에 대한 갈증이 조금 줄어들었다. 오후에는 다시 빛을 찾아 최대한 응달지지 않은 곳으로 걸으며 장보기를 다녀왔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어제처럼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9시에도 힘들게 눈뜨는데 오늘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인 8시 반에 일어난 이유가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쬐려고 무의식이 그렇게 작동한 걸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옷을 챙겨입고 몇 번을 망설이다 밖으로 나왔다. (빛에 대한 갈증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언제나 망설여진다. 집 밖은 위험해.) 천변을 따라 전주 외곽 방향으로 2.5km 정도 걸으면 논밭 가운데에 ‘시집’이라는 이름의 카페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패드와 키보드, 책 한 권을 챙겨서. 너무너무 걷기 싫은 마음을 안고 걸었다. 햇살이 눈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게슴츠레하게 뜨고 걸으며 천변 풍경을 바라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강물은 반짝거리며 흔들리고, 오리들은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떠 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강가의 돌처럼 보이는데 가만 보면 비슷한 모양의 오리들이다. 갈색 수풀 사이에는 어젯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듬성듬성 새하얗게 얹혀있고, 어떤 수풀에서는 노랑부터 초록까지의 색들이 숨어있고, 두꺼운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삼삼오오 산책하는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내 곁을 지나간다. 천변이야말로 햇빛에너지를 마음껏 맞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구나. 사방이 트여있어서 그늘이 질 일이 없다. 슬슬 다리가 무거워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데 목적지인 카페가 보인다. 며칠 전 커피를 마시고 밤새 한숨도 못 자서, 오늘은 카페인이 전혀 없는 블렌딩 티를 시켰다. 볕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오늘은 햇빛을 실컷 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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